스파르타는 군사적인 면에서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충분히 언급하고자 한다. 코린트는 재력이 풍부하여 크게 번성한 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위대한 사람은 많이 배출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유명한 아르카디아처럼 순전히 농사만을 짓는 촌락 공동체도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이런 곳을 전원적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옛날의 야만적인 공포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주민들은 헤르메스와 판 신을 섬기고, 여러 가지 풍작 숭배의 의식을 지켰다.
이 의식에서는 신상 대신에 네모난 기둥을 세워 놓고 경배하는 일이 많았다. 농민들은 너무 가난하여 소를 가질 수 없었으므로 염소가 풍작을 상징하였다. 그들은 양식이 떨어지면 판 신의 조상을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이리가 된 인간들로 생각된 한 종족이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제물로 바친 인간의 고기를 먹으면 <이리가 된 인간>이 되어 버린다고 생각하였다. 제우스 리카이오스를 모신 동굴이 있었는데, 이 속에서는 아무도 흔적을 갖지 못했으며, 한번 들어간 사람은 1년 안에 죽어 버린다는 미신이 고대에는 성행되고 있었다.
판 신은 본래 파온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은 양치는 사람 또는 목자 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테네인들이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전쟁 후에 이것을 경배하는 법을 배웠을 때, 모든신들 이라는 의미로 널리 알려진 판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는 우리가 흔히 종교라는 이름으로 생각하는 그런 종교도 많았다. 이런 종교는 올림포스 신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디오니소스 또는 바쿠스 신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 신을 불명예스럽게 술과 주정의 신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스 사상의 발전에 대해 연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신의 경배에서 어떻게 심오한 신비주의가 생겨나고 그것이 여러 철학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또 그것이 기독교 신학의 형성에 한몫을 담당한 경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잘 알아야 한다.
디오니소스나 바쿠스 신은 본래 트라키아인들의 신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인으로부터 야만인이라고 불렸다. 원시시대에 농사를 지은 사람들에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과 풍작 숭배를 하였으며, 따라서 풍작을 촉진시키는 신을 갖고 있었다. 그 신의 이름이 곧 바쿠스 였다.
이 바쿠스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은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들이 술 만드는 법을 알아내었을 때, 술에 취하는 것이 신성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 영예를 바쿠스에게 돌리기로 하였다. 나중에 그들이 포도나무를 알게 되고, 또한 포도주를 마시게 되자, 바쿠스 신을 더욱 존중하였다. 이리하여 풍작을 촉진하는 그의 능력은, 포도나 술을 먹고 마실 때의 성스러운 도취상태와 관련된 그의 기능들에 종속되게 되었다. 언제부터 트라키아에서 이 바쿠스 주신을 경배하는 의식이 그리스에 전파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역사가 비롯되기 직전의 일이 아닌가 한다. 바쿠스의 경배는 전통적인 종교릐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하나의 종교로 확립되었다.
이 바쿠스 경배는 들짐승을 여러 갈래로 찢어서 날고기를 먹는 것 같은 많은 야만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여권 신장 같은 재미있는 요소도 곁들여 있었다. 예컨대 가문이 좋은 부녀자들이 떼를 지어 언덕에서 반은 술에 취해 밤새껏 춤을 추며 황홀한 신비경에 도취하기도 하였다. 남편들은 이러한 행사가 두통거리였으나, 아무도 감히 종교에 반대하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쿠스무녀들에서, 이 종교의식의 아름다움과 야수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에서 바쿠스 경배가 성행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못 된다. 급격히 개화된 사회는 으레 그런 것이다. 적어도 그리스의 일부에서는 원시적인 것을 그리워하고, 보다 더 본능적이고 정열적인 생활을 동경했던 것이다. 그만큼 당시의 도덕에 구애를 받으며 사는 것이 지겨웠던 것이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보다 품행에 억압되어 성장한 남녀들은 합리적인 것에 갑갑증을 느끼게 되며, 도덕도 하나의 짐 또는 굴종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사상이나 감정, 혹은 행위에 있어서 반동을 일으키기 쉽다. 우리가 지금부터 고찰해 보려는 것이 바로 이 사상적인 반동이지만, 이에 앞서 감정과 행위에 있어서의 반동에 관하여 좀 언급하고자 한다.
문명인과 야만인이 다른 점은 사려에 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예겨닝 있고 없는 것으로 구별된다. 문명인은 비록 미래의 즐거움이 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앞날의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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